조선 중기의 문신이구징의 시문집이다. 이홍(李洪)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경한(李景漢) 이다. 아버지는 이상일(李尙一)이며, 어머니는 아주 신씨로 신한(申僩)의 딸이다. 7세부터글을 배웠으며, 12세에는 숙천도호부사로 떠나는 할아버지 이경한을 따라 숙천으로 갔으며, 연일 (延日)에 귀양온이유성(李惟聖)의 문하생이 되었다. 스승이 영천으로 이배되자 함께 갔으며, 스승의 아들인 이태운(李泰運)과는 동갑으로서 경쟁하며 학업에 열중하였다. 1636(인조 14)년 향시에 합격하고, 1639년 명경시와 사마시에 모두 합격, 진사가 되었다. 1657(효종 8)년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권지성균관학유가되었다. 이듬해 봉상시봉사, 1659년 박사겸봉사, 1660년에 율봉(栗峰) 찰방․전적․병조좌랑을 거쳐예조좌랑․군위현감․사헌부감찰․진도군수․ 성균관직강․옥구현감․함안군수․사제감첨정․제용감정․봉상시부정․춘추관편수관 등의 직을 지냈다. 1688년에 80세로서 부호군에 제수되고, 죽은 뒤 첨지중추부사에 추증되었다.
문집에서 소(疏)의「청왕부승질소(請王父陞秩疏)」는 1644년 그가 할아버지의 녹봉을 올려 줄 것을 청한 상소이며, 잡저(雜著)의 「재함안시발첩(在咸安時發帖)」에는 1676년함안군수로 재직할 때 향약을 제정하여 피폐된 풍속을 바로 잡았다는 기록이 있다.